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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때문에 고생했던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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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2 15:56 조회 3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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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낸 동네는 대구에서 가장 우범지대로 뽑히고 할렘이라 불리는 서구의 ㅎㅌㅊ 동네야.
당연히 주변에는 부모님이 한분 안계시거나 가난한 애들이 정말 많았어.
다행히 우리 부모님이 열심히 살아오신 덕분에 우리집은 나름 중산층에 속했었고 나에게 부족한 것 없이 잘 해주셨어.
ㅎㅌㅊ동네 답게 학교에는 제대로 교육받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
나는 4학년때부터 쭉 1등을 해왔고 수학경시대회나 백일장대회는 항상 대상을 도맡아서 해왔어.
부모님께서는 나를 아주 예의바른 아이로 키우셨어.
어른들, 특히 선생님들께는 항상 깍듯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라고 가르치셨고 나는 그걸 잘 시행했지.
다른 아이들보다 약바르지는 못했지만 공부잘하고 예의발랐던 나는 선생님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았었어.
자연히 친구들도 나를 잘 따랐었고....
지금 생각하면 내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고 생각해.
이 황금기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도 계속되었어.
담임이 20대 후반의 여선생이었는데 나를 아주 이뻐했었거든.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나에게 너무 잘 해줬어.
수업시간에 발표한번을 해도 애들앞에서 나를 엄청 치켜세워주며 칭찬해줬었고
다른선생들과 같이 있을때도 나를 불러서 자랑하곤 했어.
난 담임에게 더 잘보이기 위해서 더욱 노력했어.
다른 아이들이 꺼려하는 학교 외곽청소 같은 것도 자처해서 친구들을 격려해가며 앞장서서 했고
학교내의 대회같은것도 죄다 1등을 맡아 해서 담임의 기를 살려주곤 했지.
담임에게도 이쁨받았었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았었고 공부도 잘 됐고....
5학년의 학기 초는 정말 행복했었다.
그리고 그 생활이 계속 될 줄만 알았지 ㅎㅎ
5월쯤 됐을 때였어.
담임이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
어린애들이 뭘 알겠냐.... 선생님이 결혼한다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그저 마냥 들떠있었어.
며칠 뒤에 옆반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라.
너희가 노래를 하나 준비해서 결혼식때 불러드리라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노래를 하나 골라주셨고 방과후에 모여서 연습을 하라고 하시더라구.
그래서 우리반애들 10명정도 모아서 옆반 선생님이 주신 악보를 보며 노래연습을 했지.
모일곳이 마땅찮아서 대부분 우리집에 모여서 했었는데
그 때마다 우리 어머니께서 찜닭도 해주시고 맛있는걸 많이 해주셨어.
그리고 결혼식 당일날, 내 친구들이 용돈도 못 받을 정도로 가난하다는걸 잘 아시니까
어머니께서 애들이랑 택시잡아서 가라며 만원짜리도 주시더라....
그렇게 담임의 결혼식이 있었던 성당으로 갔지.
성당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옆반 선생님이 우리를 붙잡으셨어.
노래 부르기로 했던건 사정상 못하게 되었으니까 그냥 구경만 하라고 하시더라.
그동안 준비했던 우리들은 조금 허무하긴 했지만 긴장됐었는데 차라리 잘 됐다는 마음도 반반이었고 ㅎㅎ
예쁘게 드레스 차려입고 결혼하시는 우리 담임선생님 보면서 마냥 좋아했어.
그리고 약 2주동안 담임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임시로 다른 선생님이 왔었어.
그 2주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빨리 우리 담임선생님이 보고싶더라.
내가 담임을 참 좋아했었지 ㅎㅎ
2주가 지나고 담임이 돌아왔어.
너무 반가워서 담임에게 달려갔는데 담임이 정색하며 나를 쳐다보더라.
그리고는 말 한마디 걸지를 않더라구.
수업이 시작되었어.
발표를 할 일이 생겨서 내가 손을 들었는데 나를 지목해 주지를 않더라.
나 말고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는데 말이야.
"선생님, 저 손들었어요"
라고 말했는데 담임의 대답은 이랬어
"근데?"
점점 뭔가 이상하다는걸 느끼기 시작했지.
나를 그렇게 이뻐하고 물고 빨던 담임이 갑자기 왜 저러는걸까?
5학년짜리 머리에서 아무리 쥐어짜봤자 정답이 나올리가 없었어.
그 이상한 느낌은 맞아떨어졌고....
담임의 기행은 점점 심해졌어.
원래 교실의 자리배치는 한조에 6명씩 책상을 합쳐서 같이 앉도록 되어있었는데
느닷없이 담임이 우리조 애들을 한 명씩 다른조로 보내더라?
그리고 우리조에는 나와 애들사이에서 말이 별로 없어서 소외받던 아이.... 이렇게 2명만 남겨놓더라구.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내가 낸 수행평가 숙제는 전부 점수가 최하점이었어.
도저히 납들이 되지 않았지만 절대 보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최하점이더라.
수업중에 끼는 것도 불가능해졌고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는데 내 도화지를 찢어놓기도 했어.
이쯤되면 정말 심각한거였는데도 워낙에 순진했던 시절이라 부모님께 말씀드릴 생각을 못 했어.
다만 난 정말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저 선생이 왜이러는 걸까...?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었고
한달쯤 흘렀을때 결국 내가 폭발했어.
청소구역을 정하는데 담임이 나에게 한 구역을 모두 혼자 청소하도록 시키더라구.
그게 한동안 지속이 됐고 이유도 모르고 당하고만 있다 보니 너무 분통이 터지더라.
들고 있던 연필을 순간 부러트려서 던져버렸어.
그리고는 학교에서 나가버렸지.
집에 가니까 이미 담임이 부모님께 전화를 해놨더라.
날 아주 위아래 없는 쓰레기로 만들어놨더군.
아무 사정도 모르는 우리 부모님은 엄청 화가 난 상태였고 아버지는 빗자루로 나를 아주 개 패듯이 팼어.
태어나서 그렇게 맞아본 건 처음이었지.
아버지는 나에게 담임에게 잘못했다고 반성문을 쓰라고 하시더라.
A4용지를 한장 깔아놓고 연필을 들고 있는데.....
뭘 적어야되지?
아무 생각이 안나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게 없었거든.
20분정도 한 글자도 못쓰고 그냥 가만히 있었어.
그날 아버지한테 정말 죽도록 맞는게 뭔지를 배웠지.
진짜 사정없이 나를 패시더라.
우리 부모님은 시골에서 자라셨고 가난한 환경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못 나오셨어.
그래서 교육에 대한 동경이 매우 컸었고 선생이란 신과 같은 존재였던거야.
선생님께는 정말 무조건 깍듯이 모셔야한다고 가르쳐 왔는데
아들이 선생에게 대들었다니 나한테 실망을 많이 하신거지.
정말 반성문에는 적어 낼 내용이 없었어.
한참 맞은 후에야 이것저것 그냥 내 머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걸 다 적어가며 죄송하다고 적을수 있었어.
내 반성문을 받은 담임은 날 괴롭히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했어.
거짓없이 하루 1,2시간을 수업 대신에 애들 앞에서 날 욕하는데에 할애하더라.
청소를 나 혼자 시키기도 했고 짝꿍도, 조원도 없이 항상 혼자있게 했어.
아직까지도 나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담임은 나를 친구들과 멀어지게 하는데에 집중을 하더라.
대표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나를 복도로 나가게 시켰는데
그리고는 반 애들한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줬어.
그리고는 거기에 나를 욕하는 내용들을 적어서 내라는거야.
담임이 나를 어떻게 괴롭히건 상관없었어.
하지만 애들한테 나를 욕하게 시키는건 정말 못참겠더라.
솔직히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애들이 뭘 알겠냐?
그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은 그냥 신이었거든.
아무것도 안 적고 제출한 아이들도 많았지만
어떤애들은 어떻게는 내가 잘못하거나 실수한것들을 생각해내고 지어내기도 해서 적어내더라....
담임이 나에게 했던 악행들이 참 많았는데 18년이나 흘러서인지 모두 기억나지는 않아.
하나씩 기억해보자면....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있는데 담임이 교실로 내려왔더라.
우리반애 한명과 같이 내 앞으로 왔는데 그 애한테 짬통을 들게 해놓고는
내 식판에다가 음식찌꺼기들을 뿌리더라.
그리고는 다 쳐먹으라고 하더라구.
미술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내 옆으로 오더니
이게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혼자 화내더니 지우개로 도화지를 마구 문질러대.
그러고는 결국 도화지를 찢어버렸어.
하루는 체육시간이었는데 50미터 달리기 기록을 재는 날이었어.
애들이 도착지점에 도착하면 담임이 팔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서 스탑워치를 눌렀었는데....
내가 도착지점을 통과하는데 담임이 손을 내리면서 내 손을 연필로 콱 찍더라.
그 날 내 오른손바닥에 커다란 연필심이 박혔어.
길게 빠져나와서 연필심이 데롱데롱 매달렸는데
연필심은 바로 빼냈지만 흑연이 검게 묻어서 흉터가 아직까지 남아 있어.
담임에게 손에 연필이 박혔다고 얘기했지만 담임은 들은척도 안하고 돌아서있었어.
담임은 내 성적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었어.
수행평가를 최하점 주긴 했는데 수행평가 점수로는 100점중 3점도 깎기가 힘들었지.
시험이 끝나면 애들보고 누가 1등했냐고 물어보는데 애들이 "xx가 또 1등이에요~" 하면
표정이 아주 정색이 돼서 다시 내 욕을 하곤 했어 ㅋㅋ
수업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워낙에 ㅎㅌㅊ동네인데다가
매달 문제집을 5~6권씩 풀어대던 나는 힘들지 않게 1등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
그리고 그때 한창 야구가 유행했었어.
프랑스 월드컵 이전인 97년에는 학교 운동장에 가면 온통 야구하는 아이들이었지.
야구를 하려면 일단 글러브가 많아야 되는데 글러브 하나를 가지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어.
글러브 4개와 포수글러브1개, 야구배트2개를 가진 나는 야구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멤버였거든.
그래서 학교를 마치면 항상 반 아이들과 야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
담임은 나를 친구들과 멀어지게 하려고 애썼지만
그게 자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던거지.
그럴수록 나한테 행하는 가혹한 행동들은 더 악질적으로 변해갔어.
그런 생활이 5개월가량 지속이 되었어.
어느덧 가을이 되었지.
정말 담임은 하루도 빠짐없이 애들앞에서 내 욕을 해댔고
나는 굴하지 않았어.
담임이 무슨 말을 해도 그냥 못들은척 할 수 있게 되었고
지옥같은 수업시간을 내가 읽고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황금같은 시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게 되었어.
1등도 놓치지 않았고 대구시에서 주최하던 수학경시대회에서 상도 받아왔지.
간절하게 노력한 덕분에 내 주변에 친구들은 더 많아졌어.
친구들은 담임에게 휘둘리지 않고 담임이 없을때 내 옆에서 담임을 욕해줬지.
5개월간의 담임과 나 사이의 나름의 기싸움이었던거야.
담임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더욱 히스테리를 부렸어.
하루는 내가 가져온 야구배트와 글러브들을 빼앗아갔어.
내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게 야구덕분이라는걸 알게 된거야.
하지만 그 시점에서의 나는 호락호락 그냥 당하고만 있던 착한아이가 아니었어.
담임이 자리를 비웠을때 태연하게 배트와 글러브를 챙겨나왔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즐겼지.
한창 야구를 하고 있는데 친구가 나에게 말했어
"야, 저기 너희엄마 아니가?"
자세히 보니 우리 어머니가 교실로 가고있었어.
그리고 30분쯤 뒤에 교실에서 나오시더라구.
담임이 자기 뜻대로 안되니 또 우리 부모님께 내 험담을 한게 분명했어.
아니나다를까 집에 가니 어머니께서 난리가 나셨더라.
다행히 아직 아버지께서 집에 안계셔서 어머니만 알고 계신 상태였어.
어머니한테 한참 혼나고 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어.
운동장에서 야구하고 있던 반 친구들이 모여서 우리집으로 찾아온거지.
친구들은 어머니한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담임이 나에게 했던 온갖 나쁜짓들을 두서없이 여러명이서 막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나는 학교에서의 이야기를 집에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이 많이 크셨을거야.
어머니 표정이 굳어지셨고 조금 뒤에 아버지도 오셨어.
아버지는 공장에서 그대로 달려오셨는지 손에 시커먼 기름이 묻어 있는 상태였고.....
몹시 흥분한 상태로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학교로 갔어.
곧바로 교장실로 갔는데 교장선생님이 안계시더라.
그래서 옆에 있던 교감실로 갔어.
교감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지....
그리고 곧 담임이 소환됐어.
지금까지 그렇게 당당하던 담임이 새파랗게 질려있더라.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교감선생님이 담임에게 엄청 질책을 했고 담임은 그저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더라.
그리고 그제서야 담임이 왜 나를 괴롭혀왔는지 알게 되었어.
담임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시점이 결혼식 직후였거든.
우리 어머니가 반장 엄마였고 동네에서 형편이 좋은집이었기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었나봐.
다른 학부모들이 우리 어머니께 담임의 축의금을 얼마씩 줘야 할지 물어보곤 했는데
우리 어머니께서는 축의금을 하지 말자고 하셨대.
아이들이 담임 결혼식에 노래도 부른다는데, 꽃다발이나 준비시켜주면 되지 않겠냐고,
돈 같은거 주고 그러는게 더 이상할 것 같다고 하신거야.
그래서 다른 어머니들도 우리 어머니를 따라서 축의금을 안했던거지.
그런데 학부모들중에서도 유난히 치맛바람 풍겨대는녀들이 있잖아?
그년들중에 하나가 담임에게 알랑방구를 끼면서 그 이야기를 담임에게 했었나봐.
담임은 그 일을 복수하려고 신혼여행 끝나고 복귀하자마자 날 괴롭혀 왔던거고.
솔직히 난 담임에게 그렇게 괴롭힘 당하면서도 계속 생각했었어.
진짜로 내가 모르는 뭔가 내가 잘못한게 있는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나왔지만 계속 생각했던건데....
고작 저런이유때문에 내가 그동안 고생했다고 생각하니 참 허탈하더라 ㅎㅎ
담임은 우리 부모님과 교감선생님에게 무릎꿇고 빌었다고 해.
그리고 무슨 징계를 받았다던데.....
90년대에는 지금과 달라서 선생이 아이들 두들겨 패는게 일상이었고
그정도 일 가지고는 큰 징계를 기대하긴 어려웠어.
아마 그냥 경징계로 끝났을거야.
그리고 정작 나에게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더라.
그 일이 있은 이후에 담임이 나를 대놓고 괴롭히는 일은 줄었지만
그냥 서로 못 본척 지냈어.
어른들은 나에게 옆 학교로 전학가는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했어.
그 담임과 나머지 몇 달을 보내기가 힘들지 않겠냐는 것이었는데
아무 죄도 없이 내가 왜 전학을 가야되는지 이해가 안되더라.
그냥 참고 쭉 지내겠노라고 했어.
뭐..... 그 일 뒤로는 크게 기억남는게 없는걸 보면 무난하게 지냈던것 같다.
하지만 그 선생과의 일은 평생에 걸쳐서 트라우마로 남은것 같아.
무언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마다 꿈에서 그 선생이 나타나거든.
꿈에 그 선생이 보이면 무조건 "저년을 죽여야된다" 라는 생각밖에 안들어.
목을 졸라서 죽인적도 있고 칼빵을 놓은적도 있고 고기처럼 다져버린적도 있고....
꿈이 항상 끔찍하게 끝이 나더라.
어릴적 일이라 그냥 웃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지만 그 선생에 대해서만은 지금도 그렇게는 안되더라구.
참....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선생들중에 자격없는 인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
특히나 이런 ㅎㅌㅊ동네에서는 더했던것 같고.
내 오른손 손바닥에 남아 있는 연필심 자국을 볼 때마다 그 선생이 생각나기 떄문에
되도록이면 손바닥을 안 보고 살아.
친한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는 진지하게 그 선생을 한번 만나보는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솔직히 30살이 된 지금도 그 선생을 마주하고 진정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를 않아.
그동안 서글서글 둥글게 살아왔다고 자신하지만 그 선생에게 있어서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ㅇㅈ초등학교 5학년 3반 담임 맡았었던 최x경 선생님...
내 꿈에 좀 그만 나타나주십쇼 ㅎㅎ

3줄요약1. 나한테 존나 잘해주던 담임이
2. 결혼직후부터 나를 조난 괴롭힘3. 촌지때문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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