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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부 2명 따먹은 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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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01:35 조회 4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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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부http://www.ttking.me.com/229717

90대년 초 나는 코스모스로 대학을 졸업을 했다. 그 때도 신촌지역의 어느 대학생이

백골단이라고 불리우는 사복체포조 경찰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와 맞아 죽었다고 해서 정국이 시끄러웠다.

대학생들은 정의감에 불타 거리로 뛰어나갔지만 나는 그저 담담했다.


바로 그 몇년 전에 부산의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던지 화염병을 피하다가 전경들 7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개개의 잘잘못을 떠나서 그것은 과격한 젊은이들의 일탈이었고 시대의 아픔이었다.

어느 진영에 특정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위대들 사이에서 학생의 죽음을 슬퍼하는게 아니라 그 슬픔을 이용하여 정권을 엎으려는 증오를 보았다.


헌법에 의해 직선제로 뽑은 대통령을 마음에 안든다고 "타도" 하려고 하였다.

상징의 구호가 아니라 실제하는 체제도전을 보았다.

당시 운동권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사랑을.... 증오의 도구로 썼다.


"지훈아..혹시 말야...혹시...너 나랑 사귀지 않을래...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어볼게..."


한번은 란영이가 술을 마시다가 그렇게 나한테 어렵게 물었다. 란영이가 날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빨아 본 란영이의 C+ 가슴은 환상이었지만....아닌 것은 아니었다.


"미안해. 란영아.."


란영이는 졸업하자마자 어떤 멀쑥한 회사원과 바로 결혼했다. 그렇게 란영이도 내 곁을 떠나갔다.


난 졸업하고 잠시 쉬다가 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90년대 초 우리 경제는 조금씩 둔화기미를 보였지만

그런대로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면 블리자드 코리아 같은 좋은 회사는 아니라도 웬만한 중소기업은 들어갈 수 있었다.


난 그날 김병장에게 순희 소식을 듣고 순희를 찾으려고 했다.


"지훈아, 네가 이거 너한테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지만...이렇게 된 이상 어쩜 잊는게 맞을 지도 몰라..

먼저 간다. 또 연락하마"


엎드려서 소리내어 우는 나에게 그 한마디를 하고 김병장은 술자리를 떴다.

김병장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형우를 만났다. 그 옛날 순희가 내게 순결을 바쳤을 때 나보고 순희를 책임져야 한다고 했던 내 착한 친구 형우말이다.

형운 즈음 신학대학원을 준비하면서 전도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 설명을 들은 형우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렇다면 지훈아. 지금은 말야.. 순희씨. 굳이 찾으려고 하지 마라."

"왜?"


형우가 나를 뚫어지게 보면서 대답했다.


"순희씨는 애를 지웠으면 어떻게 할래? 그러면 너를 만나서 과연 행복할까.

혹은 애를 낳고 홀트아동복지회 같은데로 해외입양을 보냈을지도 모르고....

역시 그런 경우라면 너를 만나서 행복하겠니....


네가 변심한 것으로 알고 떠난 여자다. 몇년 지난 지금 어쩌면 지금 새남자를 만났을 수도 있고....휴..

한번에 인상사 많은 것을 돌리려고 하지마. 급진적이지 않아도 순리롭게 흐르는게 세상사다.

거스리려고 하지마.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또 만난다..내 장담한다"


놀랍게도 형우도 김병장 비슷한 얘기를 했다. 형우는 내 멘토같은 신중한 친구다.


그 시절 한국사회는 미혼모가 살기 힘든 환경이었다.


미혼모 자체가 많지 않았고 미혼모 복지시설도 없었다.

미혼모는 사회적으로 냉대를 당하거나 혹은 잘 사는 집 후처, 혹은 조금 비보통적인 환경의 남자들과 결혼하곤했다.

XX 교회 박형우 전도사는 어리숙해보이지만 이미 세상을 꿰뚫고 있엇다.


평범한 집안도 그럴진대 순희는 어린 동생과 몸이 불편한 곱추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아빠 없는 애까지 낳는다?

절대로....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시발...난 술을 벌컥 들이켰다.


결정적인 것은 어머니였다.


"아들아. 엄마가 잘못한 거 알아. 그런데 지금 아버지 건강이 너무 안좋으셔."

아버지는 공천에서 탈락하고 무소속 출마도 무산되자 이미 뇌출혈로 한번 쓰러지시고 그 뒤로도 계속 홧병을 못다스렸다.


신분계급을 중시하던 전형적인 경상도 양반 아버지는 외아들인 내가 중졸의 가정부 출신과 결혼하는 것을 허용하실 분이 아니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이자 조상에 대한 예이기 때문에 격을 갖춰야 한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옛날 분이신 아버지 입장에서는 과거로 치면 양반가문 도련님과 종년과 결혼하는 셈으로 조상에게 죄를 짓는 셈이다.


아버지의 건강은 진짜 그 때 많이 위험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단 말인가...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 간의 사연을 하나 하나 편지로 썼다. 언젠가 순희를 만나게 된다면 전해 줄려고 말이다.

오해라고...모든 게 다 오해라고.. 그런 날들이 올까... 순희야...우리 순희야....


세월이 흘러 바야흐로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아버지는 이미 정치에 손을 떼시고 사업을 준비하셨다.


사회가 또 급변했다. 한직을 떠돌던 보안대 대령 외삼촌은 이미 그전에 예편하셔서 방산업체에 잠깐 재직하다가

뛰쳐나와 아버지 사업을 돕고 있었다.


아버지의 건강은 조금 회복되었고 새로 시작한 회사는 아버지가 다니던 재벌기업의 후원으로 나날이 번창하고 있었다.

비록 공천에는 물을 먹었지만 그래도 TK인지라 6공과도 이런 저런 선은 닿아 있었고 새로 시작한 사업은 재미좋았다.


내가 28살의 나이의 사회초년병으로 한참 고생하고 있을 때 형우가 또 찾아왔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애들이 나타나서 한국사회를 진동시키고 있을 때다.

전통가요가 퇴조하고...부활, 시나위, 백두산 등이 주름잡던 한국 록의 르네상스 시대 또한

바야흐로 떠오르는 랩에게 자리를 내 주고 있었다.


"난 알아요.."가 아주 징그럽게 들리던 그 시절...

어느 식당에서 형우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한테 깡철이 얘기를 했다.


"지훈아, 너 깡철이 소식 들었냐?"

"몰라...그 새끼는 왜. 알고 싶지도 않고."


"지금 경주교도소에 있어. "


깡철이는 반정부 시국사건으로 이미 6년형인가 7년형인가 언도 받고 수감 중이었다.

그 사전의 핵심은 북한과 선이 닿아 있었다.


"나한테 깡철이 편지 왔다. 지난날 다 후회한다고 하더라."


그럴 수도 있다. 소련이 해체되고 세계적으로는 동구권이 몰락했다.

김영삼 당선 후 군사정권 타도라는 명목이 없어진 한국 사회에 많은 좌파 운동권이 혁명대열에서 이탈했다.

깡철이도 그 중 한명이었던 것 같다.


"임마, 빨갱이에게 후회가 있을 것 같니?"

"진심인 것 같더라..."


형우가 내 눈치를 보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지훈아, 깡철이 한번 면회 가자."

"야...!"


나는 발끈했다.


"너 깡철이가 나한테 어떻게 한 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해!!"

"깡철이가 너한테 미안한다고 하더라. 죽을 죄 었다고. 이제 뉘우친다고"


탁!


내가 물잔을 소리내어 탁자위에 내리쳤다.,


"형우, 너 한번만 나한테 그 따위 얘기하면 나도 너 다시는 안봐. 나 간다."

깡철이 얘기에 나는 분노가 폭발해서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아버지는 사업은 잘 되었지만 아버지의 건강은 가끔 불안했다.

혈압도 높고 어떨 때는 화를 못이기고 쓰러지시곤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빨리 결혼 하라고 성화셨지만 나는 그럴 순 없었다.

아버지는 독자인 나에게 빨리 대를 이을 손주를 보고 싶어 하셨다.


나는 아직 순희와의 아픔이 너무컸다.


물론 이성을 아예 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번은 같은 학교 미대 대학원생과 교제를 하기도 하고 엄마가 꽤 괜찮은 집안 딸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필이 없었다. 절대 순희만한 여자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순희는 내 인생의 귀한 선물이었다.


불행은 혼자서 오지 않는 다는 말이 있다.


어느날 일찍 퇴근해서 집에 가보니 우리 집앞에 왠 꼬마애들이 몰려 있엇다.

어떤 대여섯살 쯤 꼬마애가 울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애들아, 쟤 누구야? 왜우냐?"

"얘 길 잃어버렸대요"


"이 동네에선 길 잃어버릴 일이 없는데"


파출소에 데려다 줄까 고민하는데 골목 저편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재철아..."


난 안심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문득 또 순희 생각이 났다.

그 때 순희가 애를 지우지 않았으면 딱 저만한 나이인데...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아버지도 울고 계셨다. 난리가 아니였다.


"엄마, 왜 울어요?"

"지영이가..지영이가......"


노처녀였던 내 동생 지영이는 보스톤으로 유학가 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해 국내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직장 다니면서 몸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긴 했다. 그런데 급성 골수암이란다.


시발.... 이 젊은 애가...


지영이는 어릴 때 부터 공부도 아주 잘했고 우리 집안에서 촉망받던 애였다.

아버지도 당신 사업을 이어받을 재목으로 점찍곤 했다.


입원실에서 머리카락 다 빠진 지영이가 창백한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얘기했다.


"오빠, 그거 알아?"

"뭐..."


"나 석호 오빠 사랑했었다. 오빤 알았어?"


뭐.....


석호...석호라고... 우리 집에서 두 골목 넘어서 연탄가게 집 아들이 있었다.


80년대 당시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사람들이 사람들이 서울의 도시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까스배달도 하고 ..군고구마도 팔고... 연탄도 날랐다.


나랑 동갑인 그집 둘째 아들 석호가 내 동생 지영이를 어릴 때 부터 좋아했었다.


아버지의 연탄배달을 도우며 몸 어딘가 언제나 연탄가루가 끼어있었지만..걔는 성실하고 효자라고 소문났고 공부잘했다.

그런 석호가 나는 이상하게 싫었다. 일부러 마주치지 않고 피했다.


E 대 다니다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도도한 강지영도 당연히 잊은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나보다.


"오빤 모르지? 내가 왜 미국으로 갔는지?"

"너 공부하러 간거잖아..."


"석호 오빠가 나한테 사귀자고 할 때 내가 싫다고 했어. 엄마도 싫어했잖아.

그 오빠 대학교 다니면서 풍물패 하고 데모하는 데 어울려다닌다고..

그런데 내가 대학 다니면서 이상하게 석호오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보고 싶고..설레고...눈물나고..."


"그랬구나. 난 진짜 몰랐어."


한동안 지영이와 썸타다가 난 석호가 군대갔길래 다 끝나고 다 잊은 줄만 알았다.


"내가 대학교 가면서 몇명 남자 사귀어 봤는데 짝은 따로 있나보더라고.

석호 오빠 생각만 나서...진짜로 한번 사귀어 볼라고 석호 오빠 군대 면회갔었는데....흑흑흑...."


"아......"


"그 오빠..죽었다고 하더라...부대에서 지뢰인가 뭔가 제거하는 일 하다가 사고 났다고......."

"맞아....그..그랬지...."


맞다. 석호가 데모하다가 전방으로 강집당했는데 나중에 사고로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난 워낙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막 떠올랐다.


"내가 너무 어이 없어서 외삼촌한테 물어봤더니 '이상하다.

주특기가 그게 아닌데 왜 그런 일을 했지?'라고 의아해하고 입을 닫더라구."


나는 그때 악마 김규식 상병에게 괴롭힘 당하던 순둥이 박준홍 일병이 떠올랐다.

나같은 새끼는 군대에서 보안사 빽으로 호의호식 했지만 어떤 청춘들은 그렇게 전방으로 끌려가 죽어나갔다.


"오빠, 나 그래서 미국 간거야. 충격받아서. 석호 오빠 잊으려고. 공부 때문에 간거 아냐."


내가 내동생을 철부지로만 알고 너무 몰랐구나. 흑흑흑....


"오빠야, 내가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부탁하자."

"뭔데?"


"내가 예전에 순희 언니 왜 싫어했는 줄 알아?"

"글쎄...가정부라서...?"


"아냐, 오빠가 예전에 내가 고등학교 때 석호오빠 얘기 하니까

'어디 근본도 없는 연탄배달부집 아들 얘기한다'면서 엄마랑 나 아주 몰아세웠어."

"내...내가 그랬다고?"


"그래서 내가 오빠가 순희 언니 얘기했을 때... 나도 싫어하고 순희언니 미워한거야"


그랬구나. 나도 알게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간 것 구나. 아, 피는 못속인다더니..


"오빠.. "


힘이든지 지영이는 가쁜 숨을 내쉬웠다. 흑흑...하늘은 어째 이 어린 애를...


"힘들면 나중에 말해. 지영아.."


"나 죽으면 석호 오빠 무덤 가서 나 대신 꽃한송이 놓아줘. 지영이가 미안했고 정말 사랑했다고."

"그럴게. 그런데 지영아..제발 죽는다는 얘기 하지마..흑흑흑"


"오빠...고백할게 있어..미안해. 깡철이 오빠 부추긴거 나야."

"뭐....뭐라고?"


"깡철이 오빠가 엄마한테 그 얘기 할 때 나도 옆에서 거들었어.."

"그...그랬구나..."


"그때는 오빠와 순희언니도 너무 미웠는데..이제 와서 보니 다 후회가 되네..."

"지영아......"


"오빠 미워하면 다 뭘해...나 진작에 석호오빠 안찾아간건 너무 후회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석호 오빠한테 나도 사랑한다고 말할 걸...한번만이라도 사랑한다고말할 걸....으앙앙...

나도 석호오빠 놓치지 않을걸....오빠, 깡철이 오빠 다 용서해주고...순희언니..순희 언니..사랑하면 지금이라도 찾아..."


지영이의 야위고 창백한 얼굴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


"흑흑흑..지영아..."


"알았지? 오빠...꼭이다."

"알았어....알았어..지영아..엉엉..."


"오빠, 약속 지킬거지?"

"그..그래...."


얼마 후 내 동생 강지영은 28살의 꽃다운 나이로 저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렇게 집안 좋고 잘 나가던 신랑감을 소개후 줘도 계손 싫다고만 했던 내동생 지영이다.


지영이도 그렇게 말못할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걸...나는 전혀 몰랐다.

어쩌면 그런 상처가 암으로 번졌는지모른다.

어릴 때부터 늘 아옹다옹 싸웠는데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걸....흑흑...


난 어느 봄 날 형우랑 경주교도소를 찾았다.

깡말랐떤 깡철이는 하얗게 살이 찐 모습으로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나타났다.

날 보더니 놀라고 당황한 모습이다


"얌마, 깡철이. 잘 지냈냐?"

"지..지훈아..."


"감옥에서 운동좀 많이 해라. 살 많이 쪘네"

"지훈아...."


깡철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들지 못했다.


"너 네 부모님 다 건강하시더라. 내가 인사드렸다. 너 보니까 건강해보이네. 아주 좋다."

"흑흑흑......"


깡철이가 눈물을 흘린다. 개새끼....진작 잘하지.


형우도 옆에서 훌쩍 거린다. 우리들의 우정이 어떻게 이렇게 왔는지...


"미..미안하다..지..지 훈아....어헝헝..."

"깡철아, 나 지난 일 다 잊었다. 됐다. 나오면 진하게 소주나 한잔 하자. 너 몸 잘 챙겨라."


누가 그랬던가. 용서는 최고의 아름다운 복수라고. ....


나도 태연한 척 하지만 속으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우리들이 청춘을 보냈던 1980년대가 그랬다.

80년 광주의 아픔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고 우린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했다.

민주화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어떤 젊음은 그렇게 빨갱이 이념을 강요당하여 당했고 마약처럼 취해갔다.


나도 깡철이도.... 시대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대는 우정도 갈라 놓았다. 우리는 그때 어렸다.

누가 누구를 미워하랴.


나는 청와대와 법무부에 탄원서를 냈다.


"존경하는 대통령 당선자님...저의 가족은 제 친구 이강철의 허위진술로 고초를 겪고 개인적인 아픔을 겪었으나

이제 다 용서하려고 합니다... 군사정권도 역사 저편으로 물러갔으니..

이제 대화합의 차원에서 지난 날을 뉘우치는 한 젊은이들 부디 자유의 몸으로..."


바야흐르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깡철이는 얼마후 3.1절에 바로 특별사면되었다.


한달 후 자유의 몸이 된 깡철이에게 편지가 왔다.


너무 미안한다고...그러나 지금 당장 찾아 볼 면목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마음 추스리고 만나자고도 했다.


빨갱이 운동권과 완전히 절연했다는 소식.. 이런 저런 안부와 함께...마지막에 순희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순희가 서울로 이사한 것을 도와 준 것은 나다.. 아마 이사를 안갔으면 지금 거기 살고 있을 거라고도 했다.

네가 혹시 새 애인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적어둔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창 밖의 봄 아지랑이를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됐다. 때가 온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이제는 풀어 내야 한다. 내동생이 지영이도 죽기전에 후회하면서 말했다.

사랑하면 찾으라고....나는 순희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건강이 급격히 안좋아져서 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 회사일을 돕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보고 대표이사로 취임해 회사를 맡으라고도 했다. 직원 30명의 작은 회사였다.


나는 회사에 휴가를 냈다. 이제 순희를 만날 차례다.

순희는 아마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애인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나는 거리를 나섰다.

5월의 봄 햇살이 눈부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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